언폴드나래 :: 구멍난 복음

구멍난 복음

Soul List 2015.02.02 17:34

구멍난 복음, 리처드 스턴스 지음


야고보서를 읽고 있었다. 


믿음과 행위의 일치.

나는 과연 내가 믿는 만큼 세상 가운데 흘려 보내고 있을까?

그 행위가 일치하는 삶을 산다면 기독교가 이렇게 욕을 먹고 있을까?

수 많은 물음 가운데 만나게 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매너리즘으로 부터

통계로 부터

두려움으로 부터


저자는 현재 미국 월드비전 대표이다.

그가 예수님을 믿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가르치는 그 과정 가운데 인생을 사는 모습

끝까지 기도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이 인상적였다.


저자는 말한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을 모두 오려내면 성경은 너덜너덜해진다고...


크리스천이 제대로만 이 말씀을 지키면

이 세상의 분배가 제대로 될거라고.


내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외면하지 말자!


나는 알고있다.

내가 가난할 때 얼마나 채워주셨는지...

그 받은것 이상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이 땅 위에 절대로 쌓아놓지 않을 것이다.




구멍난 복음 밑줄긋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는 우리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곳이다. - 프레드릭 뷰크너

구멍난 복음, 60p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구멍난 복음 147p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선 정의의 문제요,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윤리의 문제다. 

구멍난 복음 192p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와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온갖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 이론들을 다 따져 볼 여유는 없다. 하지만 가난이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며 간단하고 빠른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두자. 한 가지 구체적인 증상을 보고서 특정한 ‘알약’을 처방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자칭 의사들이 처방한 알약들을 몇 줌씩 삼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이론들을 실험해 볼 실험용 쥐가 아니다. 나름의 풍성한 문화적 개인적 사연을 간직한 인간들이다. 그들의 삶에는 희망과 꿈, 비극과 승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가진 자산들과 하나님께 받은 능력들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 볼 때, 그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변장하신 그리스도를 엿보게 될 것이다. 

구멍난 복음, 203p


 

“내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까지 외면하지 말라” 이것은 세상의 엄청난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주는 지혜의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한 번에 모든 사람을 돕는 게 아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도우면 된다. 

구멍난 복음, 232p

 


가끔 나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사탄이 진짜로 있다는 걸 믿지 못하겠거든, 나와 함께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가보세.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네. 그런 곳에 가면 시퍼렇게 살아 움직이는 악의 얼굴을 보게 될거야.”

구멍난 복음, 250p


 

기도하라. 그러나 일어서서 움직이며 기도하라 - 아프리카 속담 

구멍난 복음, 250p


 

믿음과 행위는 다시 합쳐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순전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빈약한 견해를 뛰어 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은 어둠을 비추는 빛의 동력이 되는 원료이다. 그 빛을 그릇으로 덮어 둬선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등경 위에 두어 집 안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해야 한다(마5:15)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물질적 편안함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기독교의 핵심 가치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깆거인 환상을 다 채울 요량으로 부유함을 꿈꾸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산다고 볼 수 없다. 유명해지기를 원하거나, 앞서 나가려는 다른 이들을 짓밟는 사람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안락함은 전 세계 수십억 사람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한데, 그것을 정당한 권리로 여기고 기뻐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구멍난 복음, 307p


 

행동은 생각이 아니라 기꺼이 책임지려는 자세에서 나온다 - 디트리히 본회퍼 

구멍난 복음, 329p



비관론자는 장애물만 본다. 낙관론자는 기회만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는 그 둘 사이에 놓인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현실 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일들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멍난 복음, 405p

 

신약 성경에서 5천 명을 먹이는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한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어마어마한 과제 앞에서 우리가 가진 시원찮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생각을 바꿔 놓으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조용한 장소로 물러나 쉬려고 했지만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치유를 받기 위해 그분을 따랐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상황을 보는 눈이 얼마나 다른지 주목하게 된다. 제자들은 큰 문제만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막 6:35-36). 그러나 예수님은 똑같은 상황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셨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그리고 누가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눅 9:11)셨다.

가난과 질병, 기아와 기근, 잔혹함과 학대를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을 문제로 여기는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불행에 시달리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병약한 양떼를 보살피는 목자처럼 즉시 반응하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뭔가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군중을 보내어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말했다. “예수님, 이 문제는 주님이 처리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한 셈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원했던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문제를 곧장 그들에게 돌려 놓으셨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16)

자,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로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자리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마 14:21) 오천 명이 있었다. 그러나 많게는 만 명이나 2만 명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다소 화도 나고 겁도 났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실 수는 없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보여 드리고자 계산을 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떡을 사다 먹으리이까?(막 6:37)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예수님도 이해하실 거야.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방법은 없어.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돈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고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예수님은 집요하셨다.

예수님이 물으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38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똑같은 덫에 빠지지 않으셨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크기나 전략이나 실행 가능성을 묻지 않으셨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도 묻지 않으셨고, 그저 그들이 내놓을 것이 얼마나 되는지만 물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한 소년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마 14:18)

제자들이 보니 가진 것을 내놓을 의향이 있는 사람은 소년 한 명뿐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중에도 먹을 것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수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누가’ 내놓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딱 한 사람이 내놓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가 넉넉한 마음으로 바친 약소한 음식을 받아들고, 하나님이 믿음으로 바친 가장 작은 헌물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보여 주셨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부릴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우었으며”(19-20절)

자, 여기서 벌어지는 진짜 기적이 보이는가? 엄청난 문제와 맞닥뜨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들이 가진 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자그마한 헌물을 사용하셔서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들이 가진 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자그마한 헌물을 사용하셔서 불가능한 일을 행하셨다. 여기 담긴 원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난 크기의 고통과 필요에 질려 버린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지 않는 것은 사용하지 못하신다.’

나는 이야기의 끝 부분에, 남은 음식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였다고 구체적으로 밝혀 놓은 이유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왜 열둘이었을까? 부족한 믿음을 상기시켜 줄 구체적인 물품이 필요했던 제자가 열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각 제자는 하나님이 넘치도록 공급하신 일의 증거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점심 도시락을 내놓은 어린 소년은 자신이 바친 것을 하나님이 증식시키셔서 수천 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 그 자리에는 그가 알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을 완성시킨 것은 소년의 ‘퍼즐 조각’ 하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자신의 조각을 테이블 위에 기꺼이 내려 놓을 때, 우리도 하나님의 ‘증식’에 참여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강력하고 놀랍게 쓰임 받을 모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구멍난 복음 371p-3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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