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폴드나래 :: 'Soul List' 카테고리의 글 목록

Soul List 에 해당되는 글 82건

  1. Sam Ock - Peaceful & Lovely 2016.03.08
  2. 철인 2015.03.16
  3. 이기는 자 2015.02.16
  4. 가인 이야기(신에게 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 2015.02.05
  5. 구멍난 복음 2015.02.02
  6. 새사람 2015.02.02
  7.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2015.01.26
  8. 그녀(her) 2014.06.19
  9. 블러드 브라더 (3) 2013.10.31
  10. 테레즈 데케루, 밤의 종말 2013.10.18




Take me home, to a place I've always known

 Peaceful and Lovely, I'm not alone.


철인

Soul List 2015.03.16 17:42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철인을 읽으며 그가 하나님 앞에 쏟은 외로움들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지친 그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마다 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배려는 참 따뜻했다.


여호와의 천사가 다시 와서 그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일어나 뭘 좀 먹어라. 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먹고 마셨습니다. 그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뒤 엘리야는 밤낮으로 40일 동안을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열왕기상 19:7-8)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준을 세우고 노력하고 애썼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았던

청소년 다니엘을 기특하다고 말할 몫은 내 몫이 아닌것 같았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

내가 철저하게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안 시간이었다.


우리가 실제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에게 우리의 모든 비중을 내어드리고, 그분의 아름다움을 추적하는 삶 속에서 내 입에서 선포가 터져나오는 것은 보통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인 엄청난 행복을 완성시키는 행위이다. C.S 루이스

 

부족한 모습 그대로. 숨고 싶은 모습 그대로.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있자.

아픈 모습 그대로. 흔들리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있자.

은혜를 구하며 아픈 눈물 닦아 달라 구하며 죄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사랑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있자.

 

 

이기는 자

Soul List 2015.02.16 13:38

이기는 자, 다니엘 김


처음 다니엘 김 선교사님의 메시지를 들었던건 갈림산 기도원에서였다. 매주 철야예배를 했었는데 그 때 자주 갈림산기도원에 갔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내 삶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잘모르겠지만 모든 고통의 답도 말씀과 기도 안에 있다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그때에도 나의 중심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셨고, 만나주셨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은 옆 건물에서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초청강사로 오셨던것 같은데,

철야예배때도 스피커로 섬겨주셨다.

그때 했었던 메시지가 십여년이 흘렀지만 또렷이 기억이 남는다.


영어는 장벽이 아니라 비전이라고.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

증인된 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살아야한다고 했었던것 같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다시 그를 통해 들려주시는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

인도 아웃리치를 앞두고 화요성령집회에서...

마음의 동기를 바로하라고...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의 동기를 지키라는 메시지였다.


아웃리치 후 삶을 점검하며 다시 읽게 되었다.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회복되어야할 영역이 많지만... 다시 또 결심한다.

순금이 될 때까지... 찌꺼기들이 다 소멸할 때까지...

주를 위해 살고 싶다!!!! 진심으로


믿음의 창시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습니다.

3. 여러분, 거역하는 죄인들을 참으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지쳐 낙심하지 마십시오.

4. 여러분이 죄와 싸웠지만 아직 피를 흘릴 정도로 대항하지는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2:2-4)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피곤한 팔과 연약한 무릎을 강하게 하십시오.

(히브리서 12;12)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또 흔들리더라도 이 메시지를 절대로 놓지 않을것이다.



밑줄긋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즉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똑바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열심히 노력하라고 요구하지만, 복음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준다.

“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너의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을 바라보라. 너는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분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뼈저리게 깨닫고 여호와 앞에서 애통하라! 그리하면 너는 그토록 너를 사랑하신 분을 위하여 사나 죽으나 충성하게 되리라!”

종교는 본질적으로 ‘네 자신을 구원하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복음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느니라’라고 약속한다.

복음 이렇게 우리에게 특이한 구원을 준다. 내가 살지 못하는 인생을 그분께서 대신 살아주셨고, 내가 그렇게 못 살기기에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을 그분께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나는 그분안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기는자, 33p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동기)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시편 139:23

내 동기의 참된 정체를 나조차 가려내기 힘들지만 주님께서 내 인생을 흔드셔서, 영원하지 못한 것은 다 날아가게 하시고, 오직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만 남게 해주시기를 소원한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잡은 찌거기 같은 동기를 하나님의 비수로 도려내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할지라도 최고의 아름다움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를 소망한다면, 그 정도의 아픔쯤은 자청하자. 그럴 때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이기는 자, 40p

 

성경을 보면 고난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사실 인생에 왜 고난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사랑 안에 그 계획이 있다는 것만 알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 20)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2)

 

고난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를 원하신다. 단지 고난을 피하게 하시는 게 아니라 그것을 돌파하는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편리 위주의 삶이 아니라 영생 위주의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충성 - 죽기까지 신실하다(stay faithful to death)


화평- 공의에 가까다. 참된 평화는 깨진 공의가 회복되기 전까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 - 책임을 져야하는 누군가 있다.

어떤 문제든 가해자나 피해자가 책임을 지어야 한다.

가해자가 책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정당한 보상

피해자가 책임 - 용서를 하고 피해를 스스로 감수


성령의 사역

1.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

2.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시며

3.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것

 

좁은 길 가운데서도 또 좁은 길이 있고, 십자가의 길 가운데서 더 아픈 십자가의 길이 존대한다.

이기는 자, 293p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게 믿음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분을 믿는 것이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이 신신하신 분임을 보았기에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이기는 자, 318p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때, 먼저 내 감정을 내려놓게 하신다. 내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해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로 연합하기 위해 회개하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신다.

또한 모든 계획을 내려놓게 하신다.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고 더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게 하신다. 이 시대에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내 계획을 내려놓고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왕관을 내려놓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유명해지고, 위대해지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 보다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자아를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그분의 깃발을 들어 올리고 그분 안에서 내가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나의 연단됨도 어떠한 사역의 열매를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 앞에 순종하여 예수님만 남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안다면 땅 끝까지 가는 능력도 내 안에 있을 것이며, 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도 내 안에서 탄생될 것이다. 복음을 들고 하나님 편에 서서 승리하는 제자로 이 시대를 달려내며 이 세대를 주님께 바치는 삶을 살자.

이기는 자, 322-333p

 



가인 이야기(신에게 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 - 이상준 지음

 

토스카 리의 책, [하와] (상실의 로맨스)와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인이여.

응축된 슬픔을

무거운 짐을

두려움에 밤을

혼자

혼자

혼자

있지... 말...지...

 

 

밑줄긋기


신이 원하는 한 가지는 바로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다.

그것을 숨기지 않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숨기고 넘어가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힘들다고 외롭다고

도와달라고 고백하면 괜찮은 것인데

가인 이야기 81p

 

몸이 아파도 오늘 또 일을 해야 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인생

맘이 아파도 괜찮은 척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버텨 내야 하는 인생.

영혼이 아프고 신이 원망스러워도 또다시 신 앞에 엎드려야 하는 인생.

 

차라리 엉엉 울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신을 향해 하소연이라도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가인 이야기 85p



구멍난 복음

Soul List 2015.02.02 17:34

구멍난 복음, 리처드 스턴스 지음


야고보서를 읽고 있었다. 


믿음과 행위의 일치.

나는 과연 내가 믿는 만큼 세상 가운데 흘려 보내고 있을까?

그 행위가 일치하는 삶을 산다면 기독교가 이렇게 욕을 먹고 있을까?

수 많은 물음 가운데 만나게 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매너리즘으로 부터

통계로 부터

두려움으로 부터


저자는 현재 미국 월드비전 대표이다.

그가 예수님을 믿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가르치는 그 과정 가운데 인생을 사는 모습

끝까지 기도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이 인상적였다.


저자는 말한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을 모두 오려내면 성경은 너덜너덜해진다고...


크리스천이 제대로만 이 말씀을 지키면

이 세상의 분배가 제대로 될거라고.


내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외면하지 말자!


나는 알고있다.

내가 가난할 때 얼마나 채워주셨는지...

그 받은것 이상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이 땅 위에 절대로 쌓아놓지 않을 것이다.




구멍난 복음 밑줄긋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는 우리의 깊은 기쁨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곳이다. - 프레드릭 뷰크너

구멍난 복음, 60p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구멍난 복음 147p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선 정의의 문제요,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윤리의 문제다. 

구멍난 복음 192p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와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온갖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 이론들을 다 따져 볼 여유는 없다. 하지만 가난이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며 간단하고 빠른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두자. 한 가지 구체적인 증상을 보고서 특정한 ‘알약’을 처방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자칭 의사들이 처방한 알약들을 몇 줌씩 삼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이론들을 실험해 볼 실험용 쥐가 아니다. 나름의 풍성한 문화적 개인적 사연을 간직한 인간들이다. 그들의 삶에는 희망과 꿈, 비극과 승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가진 자산들과 하나님께 받은 능력들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 볼 때, 그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변장하신 그리스도를 엿보게 될 것이다. 

구멍난 복음, 203p


 

“내가 모든 일을 다할 수 없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까지 외면하지 말라” 이것은 세상의 엄청난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주는 지혜의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한 번에 모든 사람을 돕는 게 아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도우면 된다. 

구멍난 복음, 232p

 


가끔 나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사탄이 진짜로 있다는 걸 믿지 못하겠거든, 나와 함께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가보세.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네. 그런 곳에 가면 시퍼렇게 살아 움직이는 악의 얼굴을 보게 될거야.”

구멍난 복음, 250p


 

기도하라. 그러나 일어서서 움직이며 기도하라 - 아프리카 속담 

구멍난 복음, 250p


 

믿음과 행위는 다시 합쳐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순전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빈약한 견해를 뛰어 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원천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은 어둠을 비추는 빛의 동력이 되는 원료이다. 그 빛을 그릇으로 덮어 둬선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등경 위에 두어 집 안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해야 한다(마5:15)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물질적 편안함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기독교의 핵심 가치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깆거인 환상을 다 채울 요량으로 부유함을 꿈꾸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산다고 볼 수 없다. 유명해지기를 원하거나, 앞서 나가려는 다른 이들을 짓밟는 사람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안락함은 전 세계 수십억 사람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한데, 그것을 정당한 권리로 여기고 기뻐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구멍난 복음, 307p


 

행동은 생각이 아니라 기꺼이 책임지려는 자세에서 나온다 - 디트리히 본회퍼 

구멍난 복음, 329p



비관론자는 장애물만 본다. 낙관론자는 기회만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는 그 둘 사이에 놓인 가능성을 본다. 우리는 현실 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일들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멍난 복음, 405p

 

신약 성경에서 5천 명을 먹이는 이야기는 사복음서에 모두 등장한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통해 어마어마한 과제 앞에서 우리가 가진 시원찮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생각을 바꿔 놓으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조용한 장소로 물러나 쉬려고 했지만 큰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치유를 받기 위해 그분을 따랐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상황을 보는 눈이 얼마나 다른지 주목하게 된다. 제자들은 큰 문제만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막 6:35-36). 그러나 예수님은 똑같은 상황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셨다.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그리고 누가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눅 9:11)셨다.

가난과 질병, 기아와 기근, 잔혹함과 학대를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을 문제로 여기는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불행에 시달리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병약한 양떼를 보살피는 목자처럼 즉시 반응하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뭔가 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군중을 보내어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말했다. “예수님, 이 문제는 주님이 처리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한 셈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원했던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문제를 곧장 그들에게 돌려 놓으셨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16)

자,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로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자리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마 14:21) 오천 명이 있었다. 그러나 많게는 만 명이나 2만 명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다소 화도 나고 겁도 났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실 수는 없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보여 드리고자 계산을 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떡을 사다 먹으리이까?(막 6:37)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예수님도 이해하실 거야.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방법은 없어.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돈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고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예수님은 집요하셨다.

예수님이 물으셨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38절) 예수님은 제자들과 똑같은 덫에 빠지지 않으셨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크기나 전략이나 실행 가능성을 묻지 않으셨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도 묻지 않으셨고, 그저 그들이 내놓을 것이 얼마나 되는지만 물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한 소년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마 14:18)

제자들이 보니 가진 것을 내놓을 의향이 있는 사람은 소년 한 명뿐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 중에도 먹을 것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수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누가’ 내놓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딱 한 사람이 내놓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가 넉넉한 마음으로 바친 약소한 음식을 받아들고, 하나님이 믿음으로 바친 가장 작은 헌물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보여 주셨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부릴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우었으며”(19-20절)

자, 여기서 벌어지는 진짜 기적이 보이는가? 엄청난 문제와 맞닥뜨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들이 가진 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자그마한 헌물을 사용하셔서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들이 가진 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자그마한 헌물을 사용하셔서 불가능한 일을 행하셨다. 여기 담긴 원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난 크기의 고통과 필요에 질려 버린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드리지 않는 것은 사용하지 못하신다.’

나는 이야기의 끝 부분에, 남은 음식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였다고 구체적으로 밝혀 놓은 이유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왜 열둘이었을까? 부족한 믿음을 상기시켜 줄 구체적인 물품이 필요했던 제자가 열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각 제자는 하나님이 넘치도록 공급하신 일의 증거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점심 도시락을 내놓은 어린 소년은 자신이 바친 것을 하나님이 증식시키셔서 수천 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 그 자리에는 그가 알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을 완성시킨 것은 소년의 ‘퍼즐 조각’ 하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자신의 조각을 테이블 위에 기꺼이 내려 놓을 때, 우리도 하나님의 ‘증식’에 참여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강력하고 놀랍게 쓰임 받을 모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구멍난 복음 371p-373p

새사람

Soul List 2015.02.02 17:11

새사람, 존 스토트

 

로마서 5장-8장 강해 설교 번역본


존스토트 목사님의 친절한 안내로 인해 정말 많이 정리되었다.

특히 은혜에 대해서 연합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로마서를 다 외우고 싶다.



새사람 밑줄긋기



성령의 독특한 사역 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홍수처럼 강력하게 부어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내적으로 깊이 깨달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 8:16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설령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5절에 나오는 동사의 시제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란 구절에서의 ‘주신’이란 동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뜻하는 부정과거형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란 구절에서의 ‘부은’이라는 동사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뜻하는 완료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고 회심한 순간에 성령을 받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이미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까지 계속 흘러 넘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성령을 계속 우리 마음에 쏟아 붇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충만한 사랑이 성령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단번에 주어진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충만하도록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새사람, 25p

 

 

우리가 구원 받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직 원수와 죄인들이었을 때에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으시도록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 이것으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자신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는 했지만 궁극적인 구원에 이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궁극적인 영화가 칭의의 열매임을 말하는 다음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하셨느니라”(롬 8:30) 위에서 제기했던 질문이 여전히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다면, 자신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이 곧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삼으십시오. 우리 마음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계속해서 넘쳐나도록 쉬지 말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와 같은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것들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삼켜버린바 되도록 하십시오.

새사람, 34p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에 대한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는다가 아니라,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자유가 있는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미 죽은 것에 어떻게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겠습니까!

새사람, 51p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정죄함, 즉 사망을 짊어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런 죄 없이, 거룩한 인격으로 죄의 요구를 충족시키셨고, 그 대가를 지불하셨으며,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단번에 치루셨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죄는 더 이상 그분에게 무엇을 주장하거나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그의 대속이 충분함을 보이시기 위해 부활하셨고, 지금도 영원히 하나님께 대해 살아계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 죽으셨다는 바른 의미라면, 이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해 죽었다는 바른 의미이기도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가 죄의 형벌을 치렀다는 의미에서 우리도 죄에 대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의 옛 생활이 끝이 나고 새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새사람, 65p

 


우리는 부단히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상권이 끝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나는 하권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했던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상권의 삶을 사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결혼한 여인이 여전히 독신인 것처럼 살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를 기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편과 결합한 새로운 사람을 상징하는 반지를 만져 본다면, 그 여자는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을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요? 잠깐 동안은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삶을 상징하는 세례를 기억한다면, 그들은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떠한 신분에 속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 귀에 계속해서 죄를 지어라. 그래도 하나님이 너를 용서해주실 것이다“라고 속삭일 때,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고 죄에 머물러 있으라는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사단에게 2절의 말씀으로 응수해야합니다. ”사단아,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다. 나는 죄에 이미 죽었다. 죄에 대해 죽은 내가 어떻게 그 안에서 다시 살 수 있겠느냐! 상권의 삶은 끝났다. 나는 지금 하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꿔 말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삶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놀라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과 그 가운데서 산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삶의 비결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아는 것(6절)과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안에서의 세례임을 아는 것이며(3절)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인임을 지적으로 알고, 그렇게 여기는 데 (11절)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들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필수적으로 자리를 잡아서 옛 생활로 돌아가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때까지 이 진리들을 회상하고, 숙고하고, 꼭 붙들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어른이 어린아이 시절로, 결혼한 사람이 독신 시절로, 석방된 죄수가 수감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지 않은 생활로 돌아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세례가 우리를 옛 생활로부터 철저하게 단절시키고, 분리시켜 새로운 삶에 헌신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새사람, 75-77p


 

우리가 사단의 교활한 유혹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한 자(1-14절)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 (15-23절)

우리는 외적으로는 세례를 받았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내적으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

새사람,  84p

 


성화의 첫단계는 회심 이후에도 우리의 육신은 절망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에 대한 정직하고 겸허한 깨달음입니다.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해 높은 견해를 갖고 있는 나머지 성화의 삶을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바울처럼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것 말고 우리를 선으로 이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육신의 힘과 교활함에 우리는 결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만이 우리를 성화로 이끌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사람,  112p

 


말로 표현되든지 표현되지 않든지

기도는 영혼의 간절한 열망이며

마음속에서 숨어 전율하는 열정의 움직임.

 

기도는 흐르는 눈물과 탄식의 무거운 짐이며

누구도 가까이 없을 때

오직 하나님만을

우러러 보는 행위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새사람, 147p

누구나 한 번쯤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어봤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강아지 똥>,<몽실언니> 그의 책 만큼은 기억 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결핵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다 정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전부였는데... 우연히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너무 알고 싶어졌다.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번 못했다. 

 

위 세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가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집 개가 죽었을 대처럼 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치고는 형식도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을 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정지아 지음> <한티재 하늘1,2 권>을 읽으며 그가 떠난 지금 나는 그를 생각한다. 그의 인생을 떠올리며 인생 앞에 숙연해 지는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할까....

 

그가 처음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참 아이 답고 착하고 순수했다. 정말 순수했다.

 

정생의 집에 놀러온 작은 누나 친구들이었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정생은 자는 척 눈을 꼭 감은 채 누나들의 말에 쫑긋 귀를 세웠다. 누나들은 오늘 난생 처음 교회에 다녀온 참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그분 있잖아.”

“예수님 말이야?”

“그래. 너무 불쌍하지 않니?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앙상하게 여윈 게 너무 안 됐어. 그분도 우리 조선인들처럼 밥 먹고 살기 힘들었을까?”

순간 세찬 바람이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그 바람에 촛불이 흔들렸다. 소녀들이 나지막한 비명을 지르며 얼른 손바닥으로 바람을 가렸다.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벽에 긴 그림자로 드러났다. 정생은 실눈을 뜨고 불빛에 따라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앗! 정생은 얼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형상이 벽에 비쳤던 것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벽을 바라보았을 때 예수님의 형상은 꿈인 듯 사라지고 없었다. 우연히 그림자가 그렇게 보였던 것이리라. 그러나 얼핏 본 예수님의 형상이 눈앞에 생생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서는 뜨겁고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정생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생이 저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정생이 자는 줄만 알았던 누나의 친구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어머, 너 자다 말고 왜 우는 거니?”

누나가 정생을 품에 꼭 안으며 대신 대답했다.

“예수님이 불쌍해서 울었을 거야.. 그렇지?”

정생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지도 못한 예수님이 불쌍해서 자다 말고 운단 말이야?”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슬픈 거야. 32-33p)

 

결핵으로 고통 받고, 그 모진 가난과 아픔의 삶을 견디며 살아온 그의 인생...

그 인생이 너무 용감했다!!!!

 

밤안개 깔린

포플러나무 밑으로

가랑잎처럼 굴러갔습니다.

그날

갈릴리의 밤은

저렇게 달려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도

신호등 불빛도 없었겠지요.

여우도 굴이 있고

날아가는 새들도 깃들 곳이 있다시던

그 갈리리엔

넓은 하늘 반짝이는 별빛만이

오늘 밤도 그렇게 반짝입니다.

사람의 손이 만든

콘크리트 다리 밑

오늘 밤은 거기를

빌어들었습니다.

주님

어쩌면 이런 자리에

누추하게 함께 주무실런지요.

- [내 잠자리] 전문 (132p)

 

“먹을 힘도 없는 사람이 울 힘은 있네그려. 울 힘이 있거든 한 숟갈이라도 더 먹어야지. 그래야 힘을내지.” (129p)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정생은 그 죽을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버지가 벽에 손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정생의 손을 잡았다.

“정생아, 잘 돌아왔다.”

아버지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소리 없이 울었다. 아버지의 울음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병든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던 무능한 아비의 설운 울음이었다.

 

길거리를 떠돌던 지난 세달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 길에서 정생은 자신처럼 고통스러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예수님 같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 어디에나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했다. 어쩐지 정생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헤매고 다닌 세상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정생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돈 오십 원과 고구마 몇 개에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던 문둥이 청년, 열흘 동안 매일 아침마다 찾아갔지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깡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준 점촌의 자그마한 식당 아주머니, 가로수 밑에 쓰러져 있을 때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헐레벌떡 달려와 먹여준 할머니, 뱃삯도 안 받고 강을 건네준 뱃사공, 자기가 빌어온 밥을 기꺼이 먹여준 외팔이 사내, 그 고마운 사람들이 외롭디외로운 정생의 마음속에서 등불인 양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134p-135p)

 

그가 살았던 세상의 가장 낮은 곳.... 다윗의 아둘람 동굴이야기 같았다. 그가 쓴 시는 시편과도 같았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 그 낮은 곳에 예수님은 함께 주무시고 계셨다.

정생 아버지의 설운 울음도 그 외로움을 견디며 소리없이 마음으로 울었을 그 눈물이... 아픈 몸을 다독이며 괜찮다 괜찮다 햇을 그 시간들이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나는 정생의 종치기 시절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추운 겨울, 그 종을 치며 청지기의 삶을 혼신을 다해 사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였다. 죽지 않고, 포기 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을 겸허히 받아드리고 살아내는 것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 시절 저마다의 삶의 문제들을 내가 문제라고 여기는 문제들과는 비교도 안될 문제들을 추운 예배당 마룻바닥에 쏟아 놓았을 눈물들이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하나님이 정말 받고 싶은 기도는 어쩌면 우리는 더이상 드릴 수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하나님이 한국을 떠나신건 아닐꺼야... 조바심이 나기도했다.

 

어두컴컴한 새벽, 정생은 발딱 몸을 일으켰다. 정생의 품에서 잠들었던 생쥐가 깜짝 놀라 후다닥 도망쳤다.

“녀석, 동침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놀라서 도망치는 거야? 저녁에 또 올 겨면서. 헹."

도망치는 생쥐의 뒤통수에 농을 하면서 정생은 점퍼를 껴입었다. 마음 착한 이웃이 가져다준 헌 옷이었다. 정생은 새 옷을 사본 기억이 아득했다. 늘 남이 주는 것을 입었다. 거지 노릇을 한 것은 세 달뿐이었지만 정생은 평생 자신을 거지라고 생각했다. 남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거지. 그래서 정생의 마음엔 늘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밖은 아직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허술한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정생은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종탑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어둠 사이사이 희미하지만 결코 어둠에 잡히지 않는 별빛이 가만가만 세상 만물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마치 하느님의 사랑인 양.

정생은 이른 새벽,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종을 치기 시작했다. 쇠종이 댕그랑, 맑은 소리를 내며 어둠에 잠긴 세상으로 울려 퍼졌다. 추위에 꽁꽁 언 종에 손이 착 달라 붙는 듯했지만 정생은 혼신의 힘을 다해 종을 쳤다. 맑은 종소리가 온몸을 상쾌하게 휘감았다. 어떤 종지기에게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생은 종 치는 일을 좋아했다. 온 힘을 다해 종을 치면 종이 온몸으로 흐느껴 운다. 그 맑고 청아한 울음소리가 세상의 모든 슬픔을 치유하는 것 같았다. 종을 칠 때만큼은 정생의 마음도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 텅 빈 고요 속에 하느님이 깃든 느낌이었다. 정생의 종소리는 전쟁에 상처 받고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토닥이러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권 집사님.”

누군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정생을 불렀다. 종소리를 듣고 벌써 새벽 기도를 나온 김 장로 였다.

“아니, 제가 사드린 장갑은 어쩌고 또 맨손으로 종을 치세요?”

정생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수줍게 말했다.

“장갑을 끼면 내 마음이 장갑 때문에 가로막히는 것 같거든요. 종소리가 멀리 퍼질 것 같지도 않고요. 제 마음을 온전히 전해드리고 싶어서 맨손으로 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마세요.”

정생이 말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대기 속으로 뿜어져 나왔다. 정생은 수줍은 듯 목례를 하고는 다시 혼신을 다해 종을 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여윈 몸이었다. 그런 정생의 모습을 김 장로는 경이로운 듯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깟 종을 치는 일에 그토록 깊은 마음을 담는 종지기라니, 가난하고 병든 초라한 종지기 주변이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예배당에는 아직 전깃불도 없었다. 석유램프가 희마하게 빛나는 예배당 바닥은 한데와 다름없이 차가웠다. 하나둘 어둠을 밟고 종소리를 따라 교회에 온 사람들은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김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누구하나 춥다거나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고요히 자리에 앉아 기도들릴 뿐이었다. 첫 햇살이 비칠 때쯤 사람들은 분주히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돌아간 자리, 군데군데 눈물 자국이 진주인 듯 하얗게 얼었던 눈물을 녹였다. 녹은 눈물에 부딪힌 햇살이 고요히 얼었던 눈물을 녹였다. 녹은 눈물에 부딪친 햇살이 가슴 시리도록 눈부시게 빛났다. 사람들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떨구고 간 눈물을 보면서 정생은 어쩐지 마음이 맑아지는 듯 했다.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 종지기 아저씨 권정생 144p-147p)

 

 

누군가의 슬픔을 토닥여 주고, 몬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거룩함을 발견하고, 개똥마저 살아갈 의미가 있음을 알렸던 그의 인생을 되새겨 본다.

 

피를 토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을 이겨내며 쓴, 세상을 향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들. 초라한 내 마음에 침전물이 많은 내 마음에 진짜 치료였다.

 

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녀(her)

Soul List 2014.06.19 10:40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은 괜찮은.. 아니 좋은 영화였다.이야기는 간단하다. 이혼 결정을 앞둔 밝고 재밌었던 남자가 관계와 사랑에 의욕이 없고 상처 받았을 때, 만나게된 컴퓨터 OS속 사만다와의 사랑이야기. 이렇게 쓰고 보니 엄청 비현실 같지만 진짜 현실적였다. 무엇보다 테오도르의 외로움이 이해되었고, 사만다의 욕구는 좀 귀찮았지만 그게 연애겠지...마지막에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속도로 읽기에 공간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말은 참 찡했다. 


블러드 브라더

Soul List 2013.10.31 17:51

 

EBS 국제다큐영화제/ 우연한 기회에 챙겨보게 되었다. 

 

얼마전 인도로 선교나갈 한 형제를 알게 되었는데, 그 형제의 삶도 이 청년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로키는 인도에 있는 한 HIV 고아원에서 자원봉사하며 아이들에겐 아빠, 친구, 형으로 살아간다. 기쁘고 행복한만큼 친구들이 떠날 땐 아프고, 예상치 못한 일들로 힘이들기도 하고,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그곳에서 사는 것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였던것은 로키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는 상처 속에서 자랐지만, 결국 상처주는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 로키의 아픔이 사람을 살리는구나...

 

사랑하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아파서 너무 슬프대"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거다"

Love can do wonders.

 

그가 선택하고 사랑하는 이 길, 그에게 의미 있는 이 길을 많이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 스티브도 카메라를 들었겠지...

절친 스티브의 카메라였기에 로키가 이런 진심도 얘기할 수 있었겠지.

 

결국 진심이 이긴다.

 

_

진짜 나에게 주어진 길...

내가 가야할 길도... 더 깨닫게 된다.

 

 엔도 슈사쿠가 자신의 무덤에 같이 넣어달라고 했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 [밤의 종말]을 읽었다. 그는 왜 이렇게 모리아크의 영향을 받았을까. 그 호기심에서 데케루라는 여인을 쫓아갔다. 

 

읽는 내내 편치 않는 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냥 저냥 결혼을 선택하고, 신혼여행 부터 남편과 삐걱거림.

살면서 다르다는걸 알았을 때, 그녀가 선택 한 출구.

결국 남편을 죽이기로 마음 먹고 독살을 계획하는 한 여자의 고통.

가문의 명예 때문에 유죄보단 존재의 의미를 아예 상실하게 되는 한 여자의 숨막히는 괴로움이 너무 애절한 몸부림 같았다.

 

개인적으로 [테레즈 데케루]보다 그녀의 15년 후의 이야기를 담은 [밤의 종말]이 더 그녀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데케루가 조금더 자유롭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새 인생 같은거 시작할 수 있고, 그만 죄책감에서 놓임을 받으라고... 충분히 타협하며 살 수 있으니 자신을 괴물로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스스로 고독 속에 존재할수록 그녀의 진짜 마음엔 얼마나 사랑을 원하고, 얼마나 사랑하고 싶었고,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고 싶은지. 얼마나 자유롭고 싶었을지. 자신의 존재와 반대로 치닫는 현실을 받아드린 한 여자의 슬픔의 자서전 같았다.

 

[깊은 강]에서 미쓰코는 [테레즈 데케루]를 읽고, 그녀의 삶을 바라보며 이와 같이 느낀다. 어쩌면 그녀도 또 하나의 데케루였을까. 멍청해 보이지만 그 속에 진실이 있어 보이는 오쓰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이렇게 그토록 애써 끌려다니는걸까. 무엇을 그렇게 찾고 싶은 걸까.

 

미쓰코는 테레즈를 어둠의 숲속으로 데려가는 소설 속 기차가 모리아크의 창작임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테레즈는 현실 속 어둠의 숲을 지나간 게 아니라, 마음 깊숙이 어둠을 더듬은 것이다. 그랫구나.

그랫구나 하고 깨달은 미쓰코는 파리에 남편을 남겨둔 채 이러 시골을 애써 찾아 온 것도, 실은 자신의 마음 속 어둠을 찾기 위해서였음을 알아 차렸다. 86p

 

"저 역시 이 나리에 무언가 찾으러 온 건지도 모르겠어요."하고 대답했다. 찾고 있는 것이란 그 나옥자 오쓰일까. 아니면 테레즈 테케이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이 나라의 어둠은 문자 그대로 무명의 어둠, 영혼의 어둠이다. 미쓰코는 영혼의 어둠을 조금은 안다. 감정이 다 타 버린 한 여자로서. 테레즈 테케이루와 동류의 한 사람으로서. 173p

 

나중에 사전 찾아보고 알게 되었지만 "데케루"라는 이름의 속뜻은 수줍어하다, 부끄러워하다, 거북해하다. 이런뜻이 있구나! 어쨌든 나는 데케루의 독살을 시도한 죄보다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으니까. 그렇다고 죄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죄 없는 자가 누가 있어서 돌로 칠 수 있겠냔 말이다.

 

좀 쌩뚱맞은 결론 같지만. 진짜 꼭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 할 거다. 절대 그냥 대충 대충 나이에 타협하지 않을거다. -_- 

 

테레즈 데케루 밑줄 긋기

 

그렇다. 비록 유죄 선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고독이라는 형벌을 받은 셈이었다. 예전에는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불리던 그녀의 매력이란, 고독한 여인들에게 흔히 보이던 것이었다. 쫓고 쫓기는 삶에 지쳐, 은밀한 정신적 고통과 내면의 상처에서 비롯된 격력한 아픔이 얼굴 곳곳에 배어 있었다. 36p

 

그녀가 평화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그녀의 가슴에서 꿈틀거리던 비굴함이 반쯤 잠자고 있어 무기력한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58p

 

욕망이란 우리를 우리와 다른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 존재인걸. 62p

 

자신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고통스러워할 장소를 찾고자 혼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죽을 때가지 네 곁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이 경계 밖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는 심연을 건너 그들과 합류한다. 70p

 

그와 헤어지자 마자 나는 끝도 없는 터널에 들어가 게속해서 커져 가는 그림자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어. 때때로 나는 질식해 버리기 전에 과연 자유로운 공기를 마실 수 있을까 자문해 보곤 했지. 109p

 

밤의 종말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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