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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Soul List 2013.09.30 12:58

 

 

엔도 슈사쿠의 <깊은강> 급속도로 빠져들어 읽었다. 정말 오랜 만에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했으며,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죽음 직전에 쓴 마지막 소설 속에 그가 고민했던 종교, 신, 신앙.... 그리고 내면의 갈등... 그 흔적들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왜 죽음 앞에까지 이런 글을 썼을까. 그 초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오쓰와 미쓰코의 상황들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고, 오쓰의 삶은 며칠 동안 기도하며 고민해 볼 만큼 1) 충격적이기도 했고, 2) 하나님을 양파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꽤 신선했다. 그리고 3) 꼭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1)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양파가 유럽의 기독교 뿐만 아니라 힌두교 안에도, 불교 안에도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신부란 걸 힌두교도들도 알고 있나요?" 278p

 

"길가에 쓰러진 사람들 말인가요? 물론 모를테지요. 하지만 힘이 다한 그들이 강변에서 불꽃으로 감싸일 때 저는 2) 양파에게 기도드립니다. 제가 건네는 이 사람을 부디 품에 안아주십시오, 하고" 279p

 

"나는 힌두교도로서 본능적으로 모든 종교가 많건 적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느 종교이건 불완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지점에 모이고 통하는 다양한 길이다.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하는한 우리가 제각기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은가." -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전해 온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오쓰가 좋아하는 이부분은 정말 동의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 계실 수 있다는것은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서 그 길이 한지점에 모이기 때문에 상이한 길을 더듬어 간들 상관없지 않다는것은 정말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그안에 진리가 없다면....그것은 구원이 없는것 아닌가...

 

그러나 고민이 됐던건... 오쓰의 신앙이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던것 같다. 누구보다 예수에게 붙잡혀 사는 사람 같았다. 선악의 분별, 내가 보고 배운 진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행동은 선이다. 악이다. 말할 권리가 있을까. 과연 내가 보고 배운 진리는 참일까 거짓일까. 이런 혼란 속 의문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생각한 건... 불교에서 말하는 선악불이로,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거꾸로 어떤 악행에도 구원의 씨앗이 깃들어있다. 무슨 일이건 선과 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서, 그건 칼로 베어 내듯 나누어선 안 된다. 분별해선 안 된다. 견딜 수 없는 굶주림에 져서 인육을 입에 넣어 버린 내 전우는 거기서 짓눌려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가스통씨는 그런 지옥세계에서도 신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300p

 

3) "갠지스 강을 볼 때마다 저는 양파를 생각합니다. 갠지스 강은 썩은 손가락을 내밀어 구걸하는 여자도, 암살당한 간디 수상도 똑같이 거절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를 삼키고 흘러갑니다. 양파라는 사랑의 강은 아무리 추한 인간도 아무리 지저분한 인간도 모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흘러갑니다." 280p

 

삶과 죽음이 이 강에서는 등을 맞대고 공존하고 있다. 316p

 

엔도 슈사쿠가 가장 사랑했던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 그리고 그 15년 후의 이야기 <밤의 종말>도 읽었다. 미쓰코의 캐릭터와 테레즈 데케루가 많이 닮은 것 같고, 예쁜건 미쓰코가 더 예쁠 것 같단 상상도 함께...

 

  

밑줄 긋기

 

결국 되돌아오는건. 검은 침묵과 검은 공허감, 검은 쓸쓸함 이었다. 31p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는 건) 그때, 미쓰코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충동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야.) 대학 시절에 몸속을 마냥 치달았던, 자신을 더럽히고 싶다는 그 충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그녀는 사회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마음 깊숙이 뭔가 파괴적인 것이 숨죽이고 있다. 그것이 분명한 형태를 취하기 전에 미쓰코는 칠판지우개로 글씨들을 모조리 지우듯 소멸시키고 싶었다. 그런 파괴적인 무엇을 자극할 만한 것, 예를 들면 바그너의 오페라나 루동의 그림 같은 것들과는 통 인연이 없고 무관심한 남자와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서, 남편과 비슷한 남녀들 속에 자신을 시체처럼 묻어 버리고 싶다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바랐다. 77p

 

테레즈는 현실 속 어둠의 숲을 지나간 게 아니라, 마음 깊숙이 어둠을 더듬은 것이다. 그랫구나.

그랫구나, 하고 깨달은 미쓰코는 파리에 남편을 남겨둔체 이런 시골을 애써 찾아온 것도, 실은 자신의 마음 속 어둠을 더듬어 찾아가기 위해서였음을 알아차렸다. 86p

 

저녁 햇살이 여전히 따가운 마을을 땀 흘리며 걸었다.

체념과 피로가 뒤 섞인 생활 87p

 

벽이 너덜너덜한 집이 여기저기 충치 먹은 입처럼 서 있었다. 90p

 

"당신한테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그 사람의 고뇌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92p

 

"신은 마술사처럼 뭐든 활용하신다고. 우리의 나약함이나 죄도. 그렇습니다. 마술사가 상자에 지저분한 참새를 넣고 뚜겅을 닫고는, 신호와 더불어 뚜껑을 열잖습니까? 상자 속 참새는 새하얀 비둘기로 바뀌어 날아오릅니다." 93p

 

"신은 존재라기 보다 손길입니다." 94p

 

"양파는 한 장소에서 버림받은 나를 어느 틈엔가 다른 장소에서 되살려 주었습니다."

"그건 내 의지를 넘어 양파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95p

 

"진리에는 동양과 서양이 없다고....

 

"나는 이곳 사람들처럼 선과 악을 그다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선 속에도 악이 깃들고, 악 속에도 선한 것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은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겁니다. 나의 죄마저 활용해서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지요." 98p

 

그날 이후 매일처럼 쓰가다의 병실에 와서 병자의 손을 재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는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했다. 그 격려가 쓰가다의 고통을 치유했는지 어땠는지 기구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가스통의 자세는 꼬부라진 못 같았고, 고부라진 못은 열심히 쓰가다의 구부러진 마음에 자신을 중첩시켜 쓰가다와 더불어 고통 받고자 했다. 154p

 

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 한 번도 어느 누구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러한 인간이 어떻게 이 세상에 자기 존재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결국 저의 이혼 이유입니다. 양파는 뭐든지 활용한다고, 심지어 죄마저도라는 그 말, 아직도 믿으시나요? 176p

 

저는 양파의 존재를, 유대교 사람에게서도 이슬람교 사람에게서도 느낍니다. 양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186p

 

에나미는 어지간히 피로가 눈에 묻어 있었으나, 229p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예 떠올릴 일이 없었던 흔해 빠진 부부의 대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장면. 그런 장면이 먼 나라에 와서, 오후의 호텔 방에서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아프도록 가슴을 조이며 되살아나는 걸까. 235p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 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는 슬픔을 떠 맡았도다

2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