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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리 2019.02.02

정리

날것의 글 2019.02.02 23:49

전업맘(전업주부)에서 워킹맘(일하는 엄마)으로 시작. 그 시작은 매우 포부가 있었지만 품었던 포부와 다르게 회사를 관두고 나니 우울의 상념들이 쌓여 머릿속은 복잡했다.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로 시작되는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과거의 선택들이 후회가 되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부터였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물건들이 더 이상 이런 상태의 주인과는 못 살겠다고 파업이라도 하듯, 여기 저기 너부러져 내 마음을 어지럽게 괴롭혔다. 정리되지 않는 내 인생은 안녕하지 못해 복잡하기만 한데 이것들까지 나를 공격해 오니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이의 알록달록하게 넘쳐나는 장난감들, 잘 해보겠다고 산 엄마표 놀이 준비물들, 읽고 싶어 샀지만 읽지 않은 책장을 가득 매우고 있는 지적허영을 가장한 책들, 결혼 전 입던 몸매를 들어내는 지금 다시 입으면 어울리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한 옷가지들, 이제는 내 허리를 지탱해주는 척추의 힘을 꺾어 버리는 킬힐들, 남편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간 지난밤에 입었던 잠옷까지 눈에 거슬릴 것은 너무 많았다.

 

닥치는 대로 쓸어 다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고 싶은데 생각처럼 쉽지 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젠 더 이상 의미 없어진 것들을 붙잡고 있느니 차라리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이것저것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었다, 정말 많았다. 버릴 것이.

 

억척스럽게 몇 개의 봉투를 손에 꾸역꾸역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얼굴을 매섭게 스치는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내 꼴은 더 없이 우스웠다. 지난날에 나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물건의 조각들이 모두 쓸모없었던 것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오늘 후회로 물든 내 인생을 함께 버렸다. 단순하게 맞지 않은 회사를 그만뒀을 뿐인데 밀려오는 걱정들과 대책 없이 행복을 바라는 요행도 버렸다. 그 버려진 빈자리에 좋은 일들로 가득차길 바라면서 말이다.